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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숙(2004-10-29 19:20:40, Hit : 2963, Vote :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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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당 문학상

        미당문학상은 서정주 선생의 타계를 기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21세기에도
전하며 확대, 심화해 나가기 위해 중앙일보와 문예중앙이 2001년 제정한 상으로
시 부문의 미당문학상과 소설 부문의 황순원문학상으로 시와 소설로 나뉘어 각각 시상하고 있다.
.매년 지난해 7월부터 6월말까지 발표된 창작품을 7월초 목록을 작성하여 추천, 예심,
본심의 3심제도를 통해 수상작을 결정한다.

미당의 추천으로 등단했던 그가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특별한 인연

황동규 시인은 38년 평남 평원군 숙천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40리 떨어진 대동군 재경초등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았고, 이듬해 가족과 함께 남하했다. 고교시절 마종기 시인과 친하게 어울렸고 교과서 대신 타고르 예이츠 등의 영시집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면서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았고 서울대 문리대에 수석 입학했으니 수재이자 문재였던 셈. 대학 진학 때 법대나 의대 쪽보다는 문리대를 원했고 아버지는 “후회하지 않을 길이면 가라” 했다. 일제 말엽 다른 아이들처럼 히라카나를 가르쳐달라고 졸랐을 때 아버지가 울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나기> <카인의 후예>로 유명한 ‘국민작가’ 황순원 선생의 아들이다. 작년 겨울 황순원 선생이 돌아가시자 선생의 올곧은 인생철학과 처신, 순수 문학정신으로 일관했던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사회장으로 치르자고 했을 때 상주인 황동규 시인은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평소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을 꺼려했던 그이지만 겸손과 소박함으로 일관한 부친의 세세한 삶의 흐름만은 놓치지 않았던 셈이다. 부친이 타계하자 언론사의 인터뷰를 거절한 채 홀연히 백령도로 떠났던 그는 아버지의 삶과 문학혼을 짤막한 시로 남겼다. 부동산은 없고, 몇병의 술과 셔츠 하나, 그리고 웃으시는 사진 한장뿐이었다는, 준엄했던 그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 죽어라 뛰어온 날들.

황동규 시인은 올해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학 1학년 끝 무렵 갓 스무살에 미당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던 그이니만큼 감회가 남다르다. 지금은 이세상에 없는 평론가 김현과 함께 미당에게 세배 다녔던 황시인. 친일 어용시비와 별개로 미당 시를 읽고 감동받은 사람들은 그 감동을 진솔하게, 실존적으로 전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작품의 진정성과 나르시시즘, 그리고 토속어와 신라정신, 그가 미당에게서 배운 것들이다.

그는 ‘시란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등단 이후 여러 변모를 거듭해온 시세계는 죽음을 노래한 ‘풍장’을 넘어 삶의 궤적을 뚫고 다시 우주와 내통한다. 예수, 석가, 원효, 니체 등 성(聖)과 인간의 속(俗)이 만나는 공간을 노래한다. 일반 독자들에게 이러한 변모는 급작스럽고 부담스러움에도 한동안 이런 시도는 계속될 것 같다. “늦가을 저녁/산들이 긴 그림자를 거두어들일 때/검불 몇 날리는 바람 속에/목소리 막 지우기 시작하는/적막한 새소리.”(미당문학상 수상작 ‘적막한 새소리’ 중에서)처럼 시원(始原)의 노래를 불러 제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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